맑았다 흐렸다

사진 2010.09.15 19:36





나의 창문은 작고 비루하지만
바닥에 누우면 파란 하늘이 온전히 보이는 것이 자랑이었다.

창문을 열 때마다 런닝 바람의 옆집 아저씨와 마주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서울의 다닥다닥한 빌라촌에서 살 때에 비하면 여유로운 삶이니까.

그러던 어느 날
밖이 뚝딱뚝딱 소란스럽더니
나의 자랑이었던 창문 속 파란 하늘을 정확히 가로질러서
굵은 전선이 놓여 있는 것 아닌가?

아마도 위층 주인집에서 설치한 듯한 전선 한 가닥은
창문을 활짝 열어 놓을 수 있는 계절에 한정된 나의 작은 기쁨을 빼앗아 갔다.




아쉬워하던 중의 또 어느 날  
못 보던 푸른 빛이 어른거려서 창문을 보니
연한 초록색 손님이 창문 가장자리에 찾아와 있었다.

담쟁이 덩굴에 덮인 작은 창문을 가져보는 게
어릴 적 부터의 로망이었던 나는
또다시 창문을 볼 때마다 작은 기쁨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어느 날
말벌 두 마리가 자꾸 창가에서 기웃대는 게 아닌가?
귀여운 연두색 줄기를 찬찬히 살펴보니 작은 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근면한 말벌 커플은 하루 종일 알들을 보살피고
나는 이제 창문을 볼 때마다 창틀의 틈새를 다 막아야 하나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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