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무로 된 젓가락을 좋아했지만 그는 쇠로 된 젓가락을 좋아했고, 나는 굽이 있는 밥그릇을 좋아했지만 그는 밑이 평평한 낮은 밥그릇을 좋아했다. 그는 꽃이 피고 지는 화분을 좋아하는 반면 나는 그냥 한결같은 관엽식물을 좋아했고, 그는 부드러운 이불을 좋아하는 반면 나는 사각거리는 이불을 좋아했다. 물건을 사고 쓰는 태도도 달라서 그는 여러 가지 잡다한 세간살이들을 사들이는 것을 좋아했지만 나는 집 안에 물건이 늘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는 가격이 쌀 때 물건을 많이 사서 쟁여 두고 모자라지 않게 쓰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나는 당장 필요한 것만 그때그때 조금씩 사서 최대한 아껴 쓰는 것을 선호했다. 대부분 사소한 것들이었지만 우리가 함께 지내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취향의 차이는 놀라움을 넘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처음엔 늘 하던 것처럼 나는 내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골라서 사왔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그의 얼굴에 묻어있는 불편함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후 새로운 물건을 고를 때마다 나는 이전보다 신중히 그와 나의 취향의 타협점을 찾으려 애쓰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변화하는 것을 행복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도 그런 변화가 기꺼웠냐고? 글쎄, 내가 느끼기엔 그 건 30년 남짓 형성돼 온 나를 바닥부터 재정렬하는 일이어서, 결코 쉽지도 즐겁지만도 않았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적어도 우리가 음악에 대한 취향만은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에 우리의 플레이 리스트에 있던 음악들은 산울림, 아케이드 파이어, 바시티 버니언, 스타즈, 뉴오더 등이었고 둘 중 어느 누가 플레이 버튼을 누르든 상대가 불편해할까 봐 걱정하는 일은 없었으니까. 지금 와서 돌아보면 수많은 취향의 갈등 사이에서 단지 음악 취향이 같다는 그 한 가지 사실이 우리의 관계가 중간에 파괴되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된 (믿기 어려운!) 사실의 핵심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끝 없이 반복해서 스스로 묻게 되는 ‘우리는 왜 함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만들어 낸 불안의 웅덩이 속에 떠 있는 일종의 안전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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