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은 지어진 지 거의 30년쯤 된 4층짜리 빌라 단지인데 곳곳에 화단이라고 부르기엔 황량한 녹지들이 산재해 있다. 사실 그곳은 공용 구역이지만 보아하니 빌라 주민들의 텃밭 가꾸기의 장이 된 지 오래인 듯싶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도시의 주거 건물 틈새마다 농작물이 자라는 친환경적인 풍경에 잔뜩 고무됐고 나도 함께 작은 텃밭을 일굴 수 있으리라는 꿈에 부풀었다. 혹시 남는 자리라도 있을까 며칠을 기웃거리다 밭을 돌보던 한 중년 여자에게 근처에 무얼 좀 심을 수 있을까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싸늘했다. "안 될걸? 여기 다 주인 있어요. 그 사람들 절대로 안 나눠 줄 걸요!"

 

 단칼에 안된다는 말을 들으니 괜한 오기가 발동해서 나는 어차피 누구의 땅도 아닌데 주인은 무슨 하는 심정으로 이번엔 직접 안 쓰는 땅을 개척해 보겠다는 작전에 돌입했다. 집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빛이 오전에만 드는 정도라 아무도 탐내지 않을 것 같은 땅에 모종삽을 내리꽂는 순간, “거기에다 하면 안 될 텐데.” 어디선가 나타난 챙이 큰 모자를 푹 눌러 쓴 또 다른 중년의 여자가 내 뒤로 슥 지나가며 툭 던지는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뒤 멀리서 아이구 아이구 하는 절박한 외침과 함께 한 할머니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아니 거길 왜 파려고 그래! 거긴 내 취나물 밭이라구…!”

 

 나는 할머니에게 딱 한 평만이라도 나눠주면 안 되겠느냐고 사정해 봤지만 어림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할머니는 빌라 1동에 살지만 단지 전체를 아울러 텃밭을 소유한 일종의 대지주였다. 그쯤에서 나는 도시 속의 작은 텃밭 백일몽을 접기로 했다. 빌라의 나이 든 여인들이 오랜 시간 동안 짜놓은 공터 소유권의 네트는 참으로 촘촘하고 견고해서 나같은 초파리 한 마리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이었다.

 

 공용 구역에 텃밭이 떳떳한 일도 아니잖아? 어깨를 으쓱하면서도 남의 밭 사이에 텃밭 상자 두 개를 끼워 놓은 것이 나의 미련 남은 결론이었다. 상자에 심은 상추와 케일 등 몇 가지의 채소는 나름 잘 자라서 귀여운 이파리들을 피워냈지만, 종국에는 내가 채소를 키우는 건지 벌레를 키우는 건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할머니의 너른 취나물 밭은 여름이 되자 과연 취나물 꽃으로 빽빽이 뒤덮였지만,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도록 할머니는 취나물을 결코 수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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